
(Source : Collection of Gosate)
한옥 천장에서 발견된 이 벽지는 첫눈에 낯섭니다. 크라프트지 위로 짙은 청록색 잉크가 두 번에 걸쳐 찍혔습니다. 휘어지는 잎, 단순화된 별꽃, 그리고 화면 전체를 덮은 미세한 격자. 언뜻 보면 전형적인 당초문(唐草紋)의 변주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익숙한 동아시아 장식 문법과는 다른 결이 느껴집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바탕을 채운 격자입니다. 주요 문양 아래 깔린 이 그리드는 단순한 인쇄 기법상의 부산물이 아닙니다. 분명한 의도를 가지고 새겨진 것인데, 그 의도가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격자의 두 가지 가설
첫 번째 가능성은 직조된 천의 질감을 흉내 낸 것입니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의 전통 염색 기법인 바틱(Batik)에는 ‘니틱(Nitik)’이라 불리는 독특한 문양 계열이 있습니다. 자바어로 ‘점을 찍다’를 뜻하는 이 기법은 작은 점과 선의 조합으로 직조된 직물의 표면을 모방합니다. 13세기 인도 구자라트 상인들이 가져온 견직물 ‘파톨라(Patola)’의 정교한 이캇(ikat) 패턴을 바틱으로 재현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니틱의 핵심은 바탕입니다. 주요 문양이 아무리 화려해도, 그 아래 깔린 점과 선의 격자가 “이것은 천이다”라는 시각적 신호를 보냅니다. 이 벽지의 격자가 니틱과 같은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면, 이것은 “종이인데 천처럼 보이게 하는” 이중의 모방입니다 — 천을 흉내 내는 염색 기법을, 다시 종이 위에 인쇄한 것입니다.
두 번째 가능성은 모눈종이 효과입니다. 디자이너가 원도(原圖)를 모눈종이 위에 그렸고, 그 격자를 의도적으로 살려 인쇄했을 수 있습니다. 격자는 곧 설계의 흔적이며, “이것은 정밀하게 계산된 도안이다”라는 기술적 정교함의 과시가 됩니다. 수공예품으로서의 권위를 격자가 보증하는 셈입니다.
두 가설 모두 확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서양 벽지에서 이러한 격자 배경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고, 동남아시아 직물 문화권에서 더 자연스러운 양식이라는 점은 첫 번째 가설에 무게를 실어줍니다.

(Source : Collection of Gosate)
열대의 잎, 기하학의 꽃
문양의 중심을 차지하는 것은 휘어지는 잎입니다. 중심축에서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소엽(小葉)들, 전체가 활처럼 휘어지는 역동적 곡선. 이 형태는 온대 지방의 식물보다는 야자(椰子)나 고사리류를 연상시킵니다. 만약 격자가 동남아시아 직물 문화의 영향이라면, 이 열대 느낌의 잎 또한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동아시아의 전통 당초문에서 잎은 대개 보조적 역할에 머뭅니다. 덩굴이 주인공이고, 잎은 그 줄기에 달린 부속물입니다. 그러나 이 벽지에서는 잎 자체가 문양의 주된 무게를 담당합니다. 덩굴은 잎을 연결하는 수단으로 후퇴하고, 깃털처럼 펼쳐진 열대의 잎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잎 사이사이에 배치된 기하학적 별꽃은 여전히 정체가 불분명합니다. 6엽에서 8엽 사이를 오가는 이 꽃은 극도로 단순화되어 있어 특정 식물을 지시한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 별꽃이 문양 전체의 리듬에서 “마침표”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휘어지고 흐르는 잎들 사이에서, 정지된 기하학적 형태가 시선에 휴식을 제공합니다.
이 벽지는 2도 인쇄입니다. 동일한 청록 계열이되 농담(濃淡)을 달리한 두 색이 사용되었습니다. 밝은 청록이 잎의 소엽과 꽃잎의 윤곽을 그리고, 어두운 청록이 음영과 깊이를 더합니다. 제한된 색상 안에서 입체감을 만들어내는 이 기법은 경제적 제약의 산물이면서 동시에 양식적 선택입니다.
하나의 가설 — 남방에서 온 문법
1942년, 일본군은 네덜란드령 동인도를 점령했습니다. 이후 3년간 자바, 수마트라, 발리를 포함한 인도네시아 전역이 대동아공영권에 편입되었습니다. 이 벽지의 추정 제작 시기인 1940년대 초는 바로 이 시기와 겹칩니다.
일본 본토의 직물 및 벽지 디자이너들이 동남아시아의 장식 문법을 접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니틱의 격자, 열대 식물의 양식화된 표현, 기하학적 꽃 — 이러한 요소들이 일본을 경유해 식민지 조선까지 흘러들어왔을 수 있습니다.

(source : www.pexels.com, license type: CC)
물론 이것은 하나의 가설입니다. 동일한 문양을 가진 일본제 벽지가 발견되거나, 당시 벽지 샘플북에서 유사한 디자인이 확인되어야 비로소 입증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이 추론이 맞다면, 한옥 천장에 붙은 이 벽지는 20세기 중반 동아시아 물질문화의 복잡한 교차로를 보여주는 작은 증거가 됩니다. 인도 구자라트에서 자바로 건너간 직물 모방의 문법이, 일본 제국의 남방 진출과 함께 북상하여, 마침내 조선의 한옥 천장에 안착한 것입니다.
격자 위에 펼쳐진 열대의 잎은, 그 기나긴 여정의 끝자락에서 조용히 바스락거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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