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위로 올린 바닥, ‘단청(丹靑)빛 타일 천장지

1. 디자인의 기원: 바닥에서 천장으로, 뒤집힌 공간 이 천장지를 처음 접하면 전통 자개장의 앞면이나 사찰의 단청 문양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구조를 냉정하게 떼어놓고 보면, 이는 19~20세기 서양 건축의 바닥재, 특히 ‘엔코스틱 타일(Encaustic Tile)’이나 ‘리놀륨(Linoleum)’에서 유래한 기하학 패턴에 훨씬 가깝습니다. 엔코스틱 바닥타일Encaustic floor tiles, Bankfield Museum by Linda Spashett (Storye Book) / (CC BY 3.0) 기본 […]

2월 2, 2026

1960s

머리 위로 올린 바닥, ‘단청(丹靑)빛 타일 천장지

1. 디자인의 기원: 바닥에서 천장으로, 뒤집힌 공간 이 천장지를 처음 접하면 전통 자개장의 앞면이나 사찰의 단청 문양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구조를 냉정하게 떼어놓고 보면, 이는 19~20세기 서양 건축의 바닥재, 특히 ‘엔코스틱 타일(Encaustic Tile)’이나…

저자
GOSATÉ Archive
작성일
2026. 02. 02
연구 분류
벽지 문양 연구
시대
1960s
머리 위로 올린 바닥, ‘단청(丹靑)빛 타일 천장지

1. 디자인의 기원: 바닥에서 천장으로, 뒤집힌 공간

이 천장지를 처음 접하면 전통 자개장의 앞면이나 사찰의 단청 문양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그 구조를 냉정하게 떼어놓고 보면, 이는 19~20세기 서양 건축의 바닥재, 특히 ‘엔코스틱 타일(Encaustic Tile)’이나 ‘리놀륨(Linoleum)’에서 유래한 기하학 패턴에 훨씬 가깝습니다.

엔코스틱 바닥타일
Encaustic floor tiles, Bankfield Museum by Linda Spashett (Storye Book) / (CC BY 3.0)

기본 단위는 정사각형이 아닌, 팔각형과 마름모가 정교하게 맞물린 격자입니다. 팔각형의 테두리를 따라 얇은 노란 띠와 검은 윤곽선을 두르고, 그 안쪽으로 갈수록 삼각형을 교차시켜 별 모양을 만들어내는 구조는 빅토리아 시대 타일이나 20세기 초 리놀륨 바닥재의 전형적인 레퍼토리입니다. 중앙의 마름모 안에 찍힌 흰 덩굴잎 또한 서양 타일에서 장식적 방점을 찍는 ‘메달리온(Medallion)’ 역할을 수행합니다.

전남 장성군 구도심에 위치한 1937년작 고택에서 발견된 60년대초 벽지 원본과 고사테 복원본 벽지
(Source: Collection of Gosate)

흥미로운 점은 이 철저한 ‘바닥용(Floor)’ 문법이 ‘천장(Ceiling)’에 적용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서양에서는 발밑에 깔리던 기하학적 타일과 별 무늬가, 한국의 방 안에서는 머리 위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그 결과, 방 안네 누우면 마치 서양식 카펫이나 타일이 천장에 깔려 있는 듯한 낯설고도 독특한 공간감이 형성됩니다. 이는 1960년대 초 한국 천장지에서 종종 발견되는 ‘거꾸로 된 바닥 문법’의 가장 정교한 사례입니다.

전남 장성군 구도심에 위치한 1937년작 고택에서 발견된 60년대초 벽지 원본
(Source: Collection of Gosate)

2. 색채의 번역: 타일 격자에 입힌 ‘단청의 옷’

서양의 기하학을 빌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이 벽지에서 강한 ‘한국적 기운’이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색채(Color)’때문입니다. 크림색 바탕 위에 사용된 벽돌색 빨강, 노랑, 녹색, 검정의 네 가지 색상은 서양의 재료(붉은 점토 타일, 석재 인레이)를 흉내 낸 것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한국의 오방색(청·적·황·백·흑) 체계와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전남 장성군 구도심에 위치한 1937년작 고택에서 발견된 60년대초 벽지 원본과 고사테 복원본 벽지
(Source: Collection of Gosate)

배색 방식 또한 한국적입니다. 큰 팔각형을 채우는 녹색 면은 단청의 뇌록(청녹색) 바탕처럼 깊게 깔리고, 그 위로 벽돌색(적)과 노랑(황)이 번갈아 튀어나와 음양의 조화를 이룹니다. 중앙의 작은 꽃 장식 역시 서양의 아칸서스라기보다는 조선 도자기나 민화에 등장하는 소박한 초화문(草花紋)을 닮아 있습니다. 즉, ‘격자와 별’이라는 뼈대는 서양의 바닥재에서 가져왔지만, 그 안을 채우는 살과 피는 한국의 단청과 민화 팔레트로 다시 칠해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복제가 아니라, 한국적 미감으로 서양 양식을 재해석한 ‘자가 번역(Self-translation)’의 결과물입니다.

3. 시대의 증언: 1960년대의 ‘과도기적 미학’

이 벽지는 1960년대 초, 한국의 디자인이 일본 도안집을 그대로 베끼던 단계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입니다. 해방과 전쟁 이후, 한국의 디자이너들은 서양의 근대적 패턴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우리에게 익숙한 색감과 정서로 소화해내려 노력했습니다. 서양의 타일 패턴을 천장지로 사용하는 과감한 전용(Appropriation), 그리고 그 위에 단청의 색을 입히는 절충적인 시도는 그 치열했던 고민의 흔적입니다.

서양 타일과 한국 단청 사이, 그리고 바닥과 천장 사이. 그 경계 어딘가에서 멈춰 선 이 벽지는, 서구의 근대성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려 했던 1960년대 한국 디자인의 ‘과도기적 미학’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료입니다.

Copyright © 2026 Gosate Archive. All Rights Reserved.

본 콘텐츠의 저작권은 **고사테(Gosate)**에 있으며,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1. 텍스트 및 분석: 본문의 모든 텍스트와 학술적 분석에 대한 권리는 저자에게 있습니다.
  2. 사진 자료: ‘Gosate Collection’ 및 ‘Photo by Gosate’로 표기된 모든 실물 촬영 이미지의 저작권은 고사테에 있습니다. 사전 협의 없는 무단 전재,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3. 인용 자료: 별도로 출처가 명시된 역사적 도판 및 인용 이미지는 해당 저작권자 또는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 규정에 따릅니다.

이용 문의: contact@gosate.kr

Research Newsletter

새로운 연구 노트가 발행되면 알려드립니다

월 1–2회, 고벽지 연구와 복원 이야기를 메일로 전합니다. 언제든 구독 취소할 수 있습니다.

About the Author

Related Posts

공유된 무늬, 고유한 자리 — 굽도리지로 옮아온 능화문(菱花紋)
공유된 무늬, 고유한 자리 — 굽도리지로 옮아온 능화문(菱花紋)

시각적 관찰 이 벽지는 한옥의 아랫벽을 두르던 굽도리지(下部帶壁紙)로, 1940년대 말에서 1950년대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 도안의 골격은 분명하다 — 검은색 잉크로 찍힌 마름모 격자, 그 안을 채우는 색색의 작은 꽃이라는 2도(度) 인쇄 구조다. 본 사례에서는 격자 안의 꽃이 짙은 적갈색이지만, 이 도안 계열의 굽도리지는 꽃을 초록·파랑·빨강 등 다양한 색으로 바꾸어 인쇄해온 사방연속(四方連續) 패턴이다. 격자는 일정하고, 그 안에 앉히는 꽃의 색만이 변주된다….

격자 위의 다마스크 — 1940년대 다마스크 벽지와 동아시아의 붓끝
격자 위의 다마스크 — 1940년대 다마스크 벽지와 동아시아의 붓끝

‘월자(Weolja)’ 벽지 원본 스캔 이미지 (Source: Collection of Gosate) 시각적 관찰 1940년대의 어느 한옥에서 발견된 이 벽지(이하 ‘월자’)는, 펄프지 위에 초록색 잉크 한 가지만으로 찍어낸 1도(度) 인쇄물이다. 70여 년의 시간을 지나며 펄프지는 황갈색으로 산화했고 초록 잉크의 채도도 가라앉았지만, 표면에 새겨진 도안의 골격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다.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단 한 가지 잉크로 찍었음에도 화면이 두 개의 톤으로…

고딕의 정원 — 한반도의 일제 벽지에 새겨진 중세적 환영
고딕의 정원 — 한반도의 일제 벽지에 새겨진 중세적 환영

시각적 관찰 1930년대~40년대초로 추정되는 벽지 원본 스캔 이미지(Source: Collection of Gosate) 이 벽지는 황갈색 크라프트지 위에 흰색과 검은색 두 가지 잉크로 인쇄한 2도 인쇄 벽지입니다. 종이 원색을 포함하면 화면에는 세 가지 시각적 층위가 공존합니다 — 황갈색 바탕(종이 원색), 흰색의 주요 모티프, 검은색의 깊은 음영과 세부 디테일. 화면을 가득 채우는 것은 매우 정교한 격자 구조입니다. 둥근 첨두 아치(ogee arch) 형태의 큰 셀이…

Subscribe

📦 주문 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