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벽지로
다시 그린 노포.An old eatery, redrawn
in 1970s wallpaper.
신림동의 15평 낡은 노포를 80–90년대 골목의 아지트로 되살린 F&B 브랜딩 스튜디오 ‘제로브랜딩’, 그리고 그 분위기를 완성한 1970년대 은주(Eunju) 복원 벽지의 시간. ‘종이’라는 소재에서 발견한 공간의 온도를 기록합니다.
Project영재네집 · 신림
WallpaperEunju · Original
InterviewGOSATÉ × 제로브랜딩
공간을 짓는 일과,
기억을 짓는 일.
브랜딩은 결국 ‘무드’를 짓는 일이다. 제로브랜딩은 F&B와 전시라는, 형태는 다르지만 모두 ‘오프라인 공간’을 무대로 삼는 두 축을 나란히 이어 왔다. 명확한 콘셉트와 이야기를 공간에 정확히 앉힐수록, 머무는 사람의 경험은 깊어지고 브랜드는 더 오래 기억된다.
화려하진 않아도 사람 냄새가 나고 익숙한 정서를 건드리는 공간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킵니다.
신림동의 한 골목, 사장님이 오래 단골로 다니던 15평 노포가 그렇게 다시 태어났다. 대대적인 공사 대신 ‘시간이 만든 손때’를 살리기로 했고, 엉망이 된 벽을 덮을 치트키로 ‘패턴 벽지’를 택했다. 그 자리에 놓인 것이 1970년대 은주(Eunju) 복원 벽지다. 우리는 그 벽 앞에서, 공간을 설계한 제로브랜딩 오지혜 대표의 이야기를 들었다.
Question 01 · 병행F&B 브랜딩과 전시 디자인을 함께 이어온 이유.
제로브랜딩은 브랜드 기획을 중심으로 디자인·영상·콘텐츠 마케팅을 전개하는 회사입니다. F&B와 전시는 모두 ‘오프라인 공간’을 기반으로 펼쳐지고, 트렌드에 매우 민감하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산업의 형태는 다르지만, 명확한 콘셉트와 스토리텔링을 공간에 잘 구현해낼수록 고객의 경험 만족도가 높아지고 브랜드 충성도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두 작업은 본질적으로 매우 닮아 있습니다. 그 매력 덕분에 자연스럽게 오프라인 기반의 두 축을 메인으로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Question 02 · 공간사무실을 자연광 스튜디오로 겸해 온 이야기.
저를 포함한 모든 직원이 조금 더 아름다운 곳에서 머물기를 바랐습니다. 치열한 일터이지만 공간을 통해 작은 위안을 얻길 원했거든요. 최소한 녹색 자연과 따스한 햇살을 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양재천’이 내다보이는 지금의 사무실을 얻어 약 1년간 공간 대여를 겸한 스튜디오로 운영했습니다.
지금은 외주가 늘며 본업인 브랜딩에 집중하고 있지만, 이 코지한 사무실은 여전히 긴장감 높은 업무 속 좋은 숨통이 되어 줍니다. 클라이언트와의 편안한 미팅 공간이자, 유튜브 콘텐츠를 촬영하는 다목적 스튜디오로 유용하게 쓰고 있습니다.
치열한 일터일수록,
공간을 통해 작은 위안을 얻을 수 있기를.
Question 03 · 컨셉F&B 공간의 컨셉을 처음 잡는 과정.
가장 먼저 하는 일은 고객의 이야기를 깊이 듣는 것입니다. 대중의 시선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1차 클라이언트인 업장 대표님이 가장 좋아하고 그 안에서 스스로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이어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떤 손님이 찾아오면 좋겠는지”, “가장 행복했던 공간의 기억은 무엇인지”, “스스로 가장 잘 다루는 무기는 무엇인지”를 묻고 들으며 핵심 키워드를 길어 올립니다. 그리고 그 키워드를 대중이 소비하고 싶어 하는 관심사·트렌드와 연결해 구체적인 콘셉트를 도출합니다. 브랜드가 강한 개성을 끌고 가야 할 때와, 익숙함이 메인이 되어야 할 때의 밸런스를 잡는 데 많은 고민을 합니다.
Question 04 · 소재공간 브랜딩에서 벽지·마감재가 갖는 무게.
마감재는 공간에 들어섰을 때 파사드 다음으로 가장 많은 정보와 무드를 전달하는 요소입니다. 그래서 기획 단계에서 가장 오래 고민하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선정할 때는 공간의 크기와 층고, 동선에 따른 시퀀스를 면밀히 살핍니다. 특히 F&B는 고객이 최소 30분에서 길게는 두세 시간을 머무는 만큼, 공간이 주는 피로감이 없어야 하죠. 오래 머물러도 눈과 마음이 불편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브랜드의 독창적인 개성을 은은하게 전하는 소재를 고르는 데 중점을 둡니다.
Question 05 · 선택레트로 컨셉에서 벽지를 택하신 이유.
이번 클라이언트는 여러 레스토랑에서 10년 넘게 탄탄히 경력을 쌓다, 처음으로 자기 이름을 걸고 외식업에 도전한 30대 청년 사장님이었습니다. 맛과 서비스엔 확실한 자부심이 있었고, 제겐 “손님들이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공간을 재미있게 즐겼으면 좋겠다”는 미션을 주셨죠.
매장은 사장님이 오래 단골로 다니던 15평짜리 낡은 노포였습니다. 저희는 ‘오래된 노포의 세월과 감성’을 최대한 살리기로 했습니다. 시간이 만든 손때와 흔적은 그 어떤 인위적 디자인도 흉내 낼 수 없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철거해 보니 벽 상태가 예상보다 너무 엉망이었고, 단점은 가리면서 노포 특유의 따뜻하고 위트 있는 감성을 극대화할 치트키로 ‘패턴 벽지’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제육·닭목살·닭곰탕… 색색의 메뉴 띠가 은주 벽지 위에 정겹게 붙는다.
Question 06 · 발견복원 벽지를 처음 발견했을 때의 인상.
‘레트로 벽지’를 검색하면서도 솔직히 반신반의했습니다. 시중 제품은 대개 고급스러운 유럽풍이거나 강렬한 중화풍이라, 우리가 기획한 ‘한국식 노포’에 꼭 맞는 정감 있는 패턴이 있을까 싶었거든요. 그러다 마침 눈에 띄는 한국적인 옛 패턴을 발견해 클릭하게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과거의 디자인을 고증해 되살린 ‘복원 벽지’였고, 흥미가 생겨 사이트의 모든 라인업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요즘의 인위적인 복고풍 그래픽과는 결이 달랐어요. 실제로 존재했던 그래픽 특유의 서정적인 선과 아날로그적인 모양새가 훨씬 더 뚜렷한 개성과 고유한 아우라를 뿜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실제 과거에 존재했던 선(線)은,
인위적인 복고가 흉내 낼 수 없는 아우라를 가진다.
Question 07 · 변화시공 후, 공간은 어떻게 달라졌나.
시공이 끝나자 차갑고 낡았던 15평 매장은 순식간에 80–90년대 정겨운 골목길의 아늑한 아지트 같은 공간으로 탈바꿈했습니다.
완성된 공간을 본 사장님은 “머릿속으로만 그리던 편안하면서도 위트 있는 노포의 감성이 그대로 재현되었다”며 무척 만족스러워하셨습니다.
드럼통 테이블과 액자 메뉴판. 패턴 벽지가 노포의 골격을 따뜻하게 감싼다.
Question 08 · 흐름F&B의 레트로·복고 흐름을 어떻게 보시는지.
레트로는 사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F&B에서 꾸준히 소비돼 왔습니다. ‘생각보다 유행이 정말 길게 간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 이 정도 생명력이면 단기 유행을 넘어 하나의 ‘메가 트렌드’이자 장르로 정착했다고 봅니다.
음식을 먹고 즐기는 공간은 본질적으로 가장 편안하고 친숙해야 합니다. 화려하고 차가운, 너무 세련된 공간은 첫눈엔 멋져 보여도 매일 가기엔 어딘가 긴장을 주죠. 반면 사람 냄새가 나고 익숙한 정서를 건드리는 레트로 공간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 시킵니다. 각박한 현실 속에서 사람들이 공간을 통해 정서적 위안을 찾는 한, 이 아날로그적 흐름은 형태를 바꿔가며 계속될 거라 생각합니다.
Question 09 · 이야기‘복원된 옛날 벽지’가 공간에 건네는 이야기.
실제로 벽지를 바르고 나니, 이웃 상인분들이 지나가며 “벽지 새로 예쁘게 잘 발랐네! 근데 왜 하필 이렇게 옛날 할머니 집 같은 벽지로 골랐어?” 하고 한 보따리씩 말을 건네셨다고 해요. 그때마다 사장님은 웃으며 답하셨답니다.
우리는 누구나 어린 시절 할머니나 엄마가 차려주던 따뜻한 밥상의 향수를 품고 살아갑니다. ‘복원된 옛날 벽지’는 거창한 설명 없이도 그 시절의 온도와 기억을 직관적으로 소환해 내는 힘이 있습니다. 한식 노포 감성이 사랑받는 이 시대에, 공간이 손님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다정하고 명확한 대답이 되어 준다고 생각합니다.
은주 패턴을 가까이서. 파스텔 블루-그레이의 오지(ogee) 곡선과 올리브빛 잎사귀가 잔잔한 리듬을 만든다.
“이게 저희 가게 핵심 콘셉트예요.
벽지도 인테리어도, 일부러 옛날 느낌을 찾은 겁니다.”
Question 10 · 다음앞으로의 공간에도 복원 소재를 쓰실지.
페인트 도장이나 매끈한 타일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종이’라는 소재만이 가진 따뜻하고 포근한 감성이 있습니다. 거기에 70–90년대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하는 복원 패턴이 더해지면, 그 공간은 사람을 특정 시절로 순식간에 타임슬립시키는 강력한 서사적 힘을 갖게 됩니다.
재미있는 건 복원 벽지가 토속적·한국적 미감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시절 한국의 정서와 함께 흘러든 서양의 빈티지한 미감, 아시아의 이국적 그래픽이 묘하게 공존하거든요. 변주할 수 있는 스펙트럼이 생각보다 넓은 만큼, 앞으로의 프로젝트에서도 기회가 된다면 결을 달리해 꼭 다시 한번 크리에이티브하게 시도해 보고 싶습니다.
은주 / 오리지널Eunju · 1970s · Original
1970년대 한국의 주거 공간에 발랐던 벽지를, 고사테가 50여 년의 시간을 건너 다시 살려낸 패턴. 파스텔 블루-그레이의 오지(ogee) 곡선 안에 올리브빛 잎사귀가 담겨, 차분하면서도 정겨운 리듬을 만든다. ‘오리지널(Original)’ 컬러웨이는 노포의 낡은 벽이 머금은 시간의 색과 자연스럽게 포개진다. 신림 ‘영재네집’의 15평을 80–90년대 골목의 아지트로 되돌려 놓은 바로 그 벽지.
- Era
- 1970s · 한국 레트로
- Roll
- 50cm × 10m
- Material
- Non-woven paper
- Origin
- Designed in Korea
Made in Sweden
그 시절의 온도가
다시 머무는 자리.
신림동 골목의 낡은 노포는, 1970년대 은주(Eunju) 벽지가 50여 년의 시간을 건너오며 80–90년대의 온도를 되찾았다. 종이 한 장이 만든 향수가 손님의 긴장을 풀고, ‘옛날 할머니 집 같다’는 인사는 곧 ‘이게 우리 가게 콘셉트’라는 대답이 된다. 복원된 패턴이 토속과 빈티지, 이국의 결을 함께 품는 한, 제로브랜딩이 다음에 열 공간에서도 이 다정한 시간이 또 한 번 번져 가기를 바란다.
영재네집Youngjae’s · 신림
한식 노포 · 닭곰탕 · 제육
비 오는 골목에도 불을 밝히는 작은 노포. 복원 벽지가 끌어올린 그 시절의 온도를 직접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공간 브랜딩은 제로브랜딩(오지혜 대표)이 맡았으며, 사용된 벽지는 고사테 ‘은주 · 오리지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