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경기 일대 살림집에서 종종 발견되는 이 벽지는, 1930년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표면 전체에 은분(銀粉, silver pigment)이 깔리고 그 위에 다시 한 번 은분이 인쇄되어, 광선의 각도에 따라 문양이 은은하게 떠오르고 또 사라집니다. 작고 둥근 메달 안에 기쁠 희(囍)와 복 복(福)자가 단정하게 자리잡고, 그 사이의 바탕에는 가는 곡선들이 지렁이처럼 꾸물거리며 화면을 채우고 있습니다.
능화판의 문법
이 벽지의 구성 원리는 조선 능화지(菱花紙) 전통과 직접 연결됩니다. 능화지는 책의 표지에 무늬를 새긴 목판인 능화판으로 종이를 눌러 은은하게 문양이 드러나게 하는 조선의 책 장정 기법입니다. 표지 안쪽 배접지를 밀착시키고 동시에 표지를 장식하는 두 가지 목적을 한 번에 해결한 이 기법은 고려 말부터 사용되어 조선 시대 내내 한국 고서의 시각적 정체성을 형성해왔습니다. 이 능화지는 책 뿐만 아니라 도배지를 제조하는데도 간간히 쓰이곤 했습니다.
특히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능화판은 국화, 나비, 용, 봉황과 함께 문자문(文字紋)을 독립 문양으로 사용하곤 했습니다. 그 바탕은 만자문등 다양한 배경패턴으로 채우곤 했죠.
이 벽지는 정확히 그 문법을 따릅니다. 둥근 메달 안에 자리잡은 囍자와 福자가 주문양으로 떠오르고, 그 사이의 바탕은 추상적인 곡선 패턴으로 채워집니다. 능화판으로 책이나 벽지를 만들었던 전통의 시각 언어가, 근대기에 다시 한 번 발화되고 있는 셈입니다.

잉크 없이 인쇄하는 법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인쇄 기법입니다. 능화판이 잉크를 묻히지 않고 종이를 눌러 엠보싱만으로 문양을 드러내는 것처럼, 이 벽지 역시 강한 색 대비가 아니라 은분의 미세한 농담 차이로 문양을 떠오르게 합니다. 전체 화면에 한 번 은분을 깔고, 그 위에 다시 한 번 은분으로 문양을 인쇄한 것입니다.
이 이중 인쇄가 만들어내는 효과는 단순한 색 대비와는 다릅니다. 광선의 각도에 따라 문양이 또렷이 보이기도 하고 거의 사라지기도 합니다. 정면에서 보면 평평한 은빛 면처럼 보이지만, 시선의 각도가 바뀌면 囍자와 福자가 조용히 떠오릅니다. 이것은 엠보싱의 시각 효과를 잉크라는 매체로 번역한 것입니다 — 능화판이 종이의 두께로 만들었던 깊이감을, 이 벽지는 은분의 반사율 차이로 만들어낸 것이죠.
조선 시대에도 금분이나 은분으로 종이를 장식하는 전통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안료를 대량의 일정한 면적에 균질하게 인쇄하여 반복 패턴을 만드는 기법은 분명 근대 인쇄 산업의 산물입니다. 능화판의 미감을 유지하면서 그것을 새로운 매체와 기술 안에서 다시 구현하려는 의식적 시도가 이 벽지에 담겨 있습니다.
버미큘러(Vermicular) — 바탕 패턴의 정체
배경에 깔린 곡선 패턴은 단순한 추상 무늬가 아닙니다. 이것은 양식사적으로 분명한 이름과 계보를 가진 모티프, 버미큘러(Vermicular) 양식입니다.
라틴어 vermiculus(“작은 벌레”)에서 유래한 이 명칭은, 마치 나무나 돌 표면에 벌레가 지나간 흔적처럼 불규칙한 곡선이 미로처럼 얽히는 패턴을 가리킵니다. 18~19세기 프랑스와 영국의 인쇄 면직물에서 다른 모티프의 채움재나 배경으로 자주 활용되었고, 그 기원에는 인도의 침대 휘장인 팔람포레(Palampore)의 영향이 있습니다. 인도에서 영국과 프랑스로, 다시 19세기 벽지 산업으로 이어진 분명한 양식 계보를 가진 어휘인 것입니다.
이 벽지가 단순히 “추상적 곡선을 배경에 깐 것”이 아니라 의식적으로 버미큘러 양식을 차용했다는 점은 중요합니다. 능화판의 卍자 바탕이라는 동아시아적 어휘가 있던 자리에, 유럽-인도 계보의 vermicular가 들어선 것입니다. 이 치환이 이 벽지의 근대성을 가장 함축적으로 보여줍니다.

길상 어휘의 민주화
囍자와 福자라는 모티프 자체는 동아시아 길상 문화의 중심 어휘입니다. 두 개의 희(喜)자가 붙은 쌍희자(囍)는 결혼의 겹경사를 의미했고, 복(福)은 가장 폭넓은 길상의 기호였습니다. 이 두 글자는 조선 시대 혼수 이불의 자수, 병풍의 문자도, 백자 청화의 그림, 혼례복의 금박 등에 끊임없이 등장하던, 가장 친숙하면서도 가장 무거운 의미를 담은 문자였습니다.
특히 19세기 왕실 도배지의 핵심 어휘가 바로 이런 길상 문자문이었다는 점은 흥미롭습니다. 창덕궁 석복헌의 첫 도배지가 박쥐문양과 함께 목숨 수(壽)와 임금 왕(王)을 결합한 문자문으로 장식되어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왕실의 사적 공간을 길상의 기호로 감싸는 전통이 있었던 것이죠.
이 벽지가 보여주는 것은 그 왕실 어휘가 30~40년의 시차를 두고 인천-경기 중산층 살림집의 벽으로 내려온 모습입니다. 한때 궁궐 안쪽 깊은 방을 장식하던 길상의 언어가, 이제 보통 사람들의 신혼방을 감싸기 시작한 것입니다. 인쇄 기술의 발달이 만들어낸 작은 혁명입니다.
1930년대라는 시대
1930년대는 한반도 인쇄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자리잡은 시기였습니다. 1931년 만주사변 이후 식민지 경제가 대공황을 벗어나면서 인쇄 자본의 이윤 구조가 개선되었고, 이는 벽지 같은 일상 인쇄물의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한 경제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동시에 이 시기는 도시 중산층의 가정 문화가 형성되던 때이기도 합니다. 신여성, 자유연애, 우애결혼 같은 새로운 사조가 도시 지식인 사이에 퍼졌고, 결혼이라는 사건과 그 결혼이 이루어진 신혼방이라는 공간이 새로운 사회적 의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결혼이 가문과 가문의 결합이 아니라 두 개인의 새 출발이라는 인식이 자리잡으면서, 신혼방을 길상의 기호로 감싸 두 사람의 새 삶을 축복하는 인테리어 관습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벽지가 인천-경기 일대 살림집에서 종종 발견된다는 사실도 의미심장합니다. 인천은 개항장이었고 경기 지역은 경성 주변의 신흥 주거지가 형성되던 곳이었습니다. 새로 결혼하여 새 집을 마련한 도시 중산층 부부가 자신들의 신혼방 벽에 이 길상의 벽지를 붙였을 풍경이 떠오릅니다.
세 층위의 만남
이 벽지에는 세 가지 시각 문화 층위가 한 화면에서 만나고 있습니다.
가장 아래에는 조선 능화판 전통이 있습니다. 둥근 메달 안에 문자문을 배치하고 바탕 패턴 위에 주문양을 얹는 이층 구조, 잉크 대신 엠보싱으로 은은하게 문양을 드러내는 미감 — 이 모든 것이 조선 책 장정 문화에서 이어진 어휘입니다.
그 위에 서양 근대 인쇄 산업의 어휘가 겹쳐 있습니다. 인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 vermicular 양식의 배경 패턴, 균질한 면적에 안료를 일정하게 인쇄하는 기계 기술, 은분이라는 새로운 매체. 능화판의 미감이 근대 인쇄의 옷을 갈아입은 것입니다.
가장 위에는 1930년대 한반도 사회의 변화가 있습니다. 왕실의 길상 어휘가 중산층 가정으로 내려오는 장식의 민주화, 신혼방이라는 새로운 사적 공간의 등장, 인쇄 자본의 성장. 이 사회적 흐름이 없었다면 이 벽지는 만들어지지도 소비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이 벽지가 갖는 의의
이 벽지는 화려하지 않습니다. 정면에서 보면 거의 아무 무늬도 없는 은빛 면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조용한 표면 아래에는 능화판에서 이어진 길상의 전통, 인도에서 유럽을 거쳐 들어온 vermicular 양식, 그리고 왕실의 어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가던 한 시대 중산층의 욕망이 겹겹이 쌓여 있습니다.
은분 위에 은분을 다시 인쇄해 만든 이 은은한 깊이감은, 책 표지에 능화판을 눌러 만들던 조선의 미감이 근대 인쇄의 매체로 옮겨가는 한 장면을 보여줍니다. 1930년대 어느 신혼방 벽 위에서, 囍자와 福자는 두 사람의 새로운 시작을 조용히 축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축복의 형식이 한때 궁궐 안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라는 사실이, 이 작은 벽지를 한 시대의 조용한 증언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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