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자 위의 다마스크 — 1940년대 다마스크 벽지와 동아시아의 붓끝
1940년대 한옥에서 발견된 다마스크풍 벽지를 살펴봅니다. 격자 구조와 붓끝처럼 번지는 선, 동아시아적 장식 문법이 유럽 직물 문양의 언어와 만나는 지점을 기록합니다.


시각적 관찰
1940년대 어느 한옥에서 발견된 이 벽지(이하 ‘월자’)는, 펄프지 위에 초록색 잉크 한 가지만으로 찍어낸 1도(度) 인쇄물입니다. 70여 년의 시간을 지나며 펄프지는 황갈색으로 산화했고 초록 잉크의 채도도 가라앉았지만, 표면에 새겨진 도안의 골격은 여전히 또렷하게 남아 있습니다.
먼저 눈길이 가는 것은 인쇄의 밀도입니다. 단 한 가지 잉크로 찍었는데도 화면이 두 개의 톤으로 읽힙니다. 두 번째 색을 더한 것이 아니라, 솔리드하게 채운 문양의 실루엣과 그 아래 깔린 미세한 격자의 망점 밀도를 달리한 결과입니다. 색을 늘리지 않고 선의 농밀(濃密)만으로 명암과 깊이를 빚어냈습니다. 물자가 넉넉하지 않던 시기에 잉크 한 도수를 아끼는 일은 곧 원가의 문제였고, 이 벽지는 그 제약을 양식으로 옮겨 놓은 사례입니다.
직조패턴
화면 전체에는 미세한 격자가 깔려 있습니다. 주요 문양 아래로 흐르는 이 그리드는 인쇄상의 부산물이 아니라 의도된 바탕입니다. 격자는 “이것은 종이가 아니라 직물”이라는 시각적 신호를 보냅니다.
이 신호는 표면 문양이 **다마스크(damask)**라는 점을 떠올릴 때 한층 의미심장해집니다. 다마스크라는 말 자체가 본디 견직물의 직조 문양에서 온 이름이고, 다마스크 벽지의 존재 이유는 애초에 “벽에 비단을 두른 듯” 보이게 하는 데 있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벽지에서 격자는 단순한 충전 텍스처가 아니라, 종이를 직물로 보이게 하는 장치입니다.
다마스크라는 골격
도안은 오지(ogee)·마름모 격자 위에 펼쳐진 전형적인 올오버 다마스크 구조입니다. 격자의 교차점마다 방사형의 데이지·아스터형 로제트가 또박또박 앉고, 그 사이를 좌우대칭의 스크롤 문양이 잇습니다. 빈 공간은 작은 꽃이 충전 모티프로 메웁니다. ‘중심 로제트 — 연결 스크롤’로 이어지는 이 패턴은 프랑스·영국 다마스크 벽지의 문법을 그대로 물려받은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이 벽지는 서양 양식의 충실한 모방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결정적 단서는 문양의 ‘끝’에 숨어 있습니다.

월자’ 패턴의 구조 분석. 오지·마름모 격자 위에 중심 로제트와 좌우대칭 스크롤이 배열된 전형적 다마스크 구조. (Source: Collection of Gosate)
둥글려진 끝 — 서양 문양 위에 얹힌 동양의 손
유럽 아칸서스(acanthus) 문양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톱니처럼 들쭉날쭉한 잎 가장자리와 뾰족하게 갈라지는 결각입니다. 그리스식은 잎 끝이 날카롭고, 로마식으로 가며 다소 둥글어지더라도 결각과 율동적인 말림만큼은 끝까지 유지됩니다.
그러나 ‘월자’의 스크롤은 그렇지 않습니다. 톱니가 거의 사라지고, 끝이 매끈하게 둥근 갈고리·곤봉 형태로 맺힙니다. 이 둥근 종결은 서양 아칸서스의 어휘가 아니라, 오히려 동아시아 당초(卷草)·여의(如意)·운문(雲紋) 계열의 모국어입니다. 여의의 머리가 주먹·구름·영지(靈芝) 형태로 둥글게 닫히듯, 이곳의 스크롤도 매끈한 곤봉형으로 마무리됩니다. 서양의 골격 위에 동양의 붓끝이 얹힌 셈입니다.
서양의 날카로운 아칸서스가 동아시아의 손을 거치며 둥글고 뭉툭하게 번안되는 이 현상은, 앞서 교동도에서 발견된 ‘재호’ 벽지를 다루며 자세히 살핀 바 있습니다. 1930~40년대 상하이의 광고 도판 월분패(月份牌)가 보여주던 ‘상하이 모던’의 미감 — 서양 양식을 동양화의 붓맛으로 둥글게 풀어낸 그 감각 — 이 ‘월자’의 종결부에도 똑같이 흐릅니다.


정리하면 ‘월자’는 두 개의 층위를 품습니다. 구조는 서구 다마스크, 세부의 종결은 동아시아 당초. 서양의 비단무늬라는 그릇 안에 동양의 붓끝이 빚은 둥근 곡선이 담긴 혼종(hybrid)의 결과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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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의 벽지 — 복원본
월자 (Weolja)
194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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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색상
- Original / Dusty Sky
- 소재
- Non-woven / Peel & Stick
- 사이즈
- 50×6m / 50×10m / 50×244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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