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 교동(喬桐): 제국의 잉크, 그리고 벽지 뒤의 현실

‘재호’ 벽지 원본 스캔 이미지 (Source: Collection of Gosate) 1. 경계의 섬, 그리고 ‘엔 블록(Yen Bloc)’의 기억 주말이면 꽤 많은 여행자가 찾아오는 곳이지만, 교동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묘한 긴장감을 동반합니다. 강화도에서 교동대교를 건너려 할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이 붉은 깃발과 해병대의 검문소이기 때문입니다. 출입증을 건네받는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잊고 지냈던 사실을 […]

2월 1, 2026

‘재호’ 벽지 원본 스캔 이미지
(Source: Collection of Gosate)

1. 경계의 섬, 그리고 ‘엔 블록(Yen Bloc)’의 기억

주말이면 꽤 많은 여행자가 찾아오는 곳이지만, 교동도로 들어가는 길은 여전히 묘한 긴장감을 동반합니다. 강화도에서 교동대교를 건너려 할 때 우리를 가장 먼저 맞이하는 것이 붉은 깃발과 해병대의 검문소이기 때문입니다. 출입증을 건네받는 그 짧은 침묵 속에서, 우리는 잊고 지냈던 사실을 문득 자각하게 됩니다. “아, 여기가 바로 남과 북이 총구를 겨누고 있는 접경지역이지.”

Fig 1. 교동읍성(喬桐邑城) 유허(遺墟)의 현황. 
현재는 적막한 접경지대이나, 1940년대 당시 이곳은 ‘엔 블록(Yen Bloc)’ 경제권의 물자가 집결하던 서해안 물류의 핵심 결절점이었다. 
(Photo by Gosate 2023)

하지만 시곗바늘을 1943년으로 되돌려보면, 이곳의 풍경은 지금의 삼엄함과는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예로부터 경기·황해·충청 삼도(三道)의 물길이 모이는 요충지였던 교동도는, 1940년대 초반 ‘대동아공영권’이라는 기치 아래 일본-조선-만주-중국을 잇는 거대한 경제 공동체, 이른바 ‘엔 블록(Yen Bloc)’의 혈관과도 같았습니다. 황해도 연백평야의 풍요로운 물산과 중국의 최신 문물이 교동읍성의 남산포(南山浦)를 통해 드나들었고, 전시 인플레이션으로 풀린 막대한 자금이 이 섬으로 흘러들었습니다.

오늘 소개할 벽지는 바로 그 시절, 전쟁 특수의 활기가 넘치던 교동읍성 인근의 어느 한옥집에서 발견된 것입니다.

fig 2. 벽지가 발견되었던, 교동읍성 안에 위치한 폐가
(Photo by Gosate 2023)

2. 바닥의 견고함과 벽의 화려함: 하이브리드 타일의 미학

1) 빅토리아 시대의 향수: 네오고딕과 엔코스틱 타일

이 벽지의 도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잠시 19세기 중엽의 영국으로 시선을 돌려야 합니다. 산업혁명으로 공장 굴뚝과 철골 구조물이 도시를 뒤덮던 시기, 영국 사회는 역설적으로 중세의 성당과 수도원이 보여주던 ‘영적인 아름다움’을 갈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네오고딕(Neo-Gothic) 운동입니다. 당시 건축가들은 건물의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를 채우는 바닥재와 직물까지도 중세의 기하학적 질서를 따르길 원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엔코스틱 타일(Encaustic Tile)입니다.

Fig 6. A.W.N. 퓨진(Pugin), 『대조(Contrasts)』 중 ‘1440년의 가톨릭 도시와 1840년의 동일한 도시’ (1841).
수많은 첨탑이 솟은 15세기 중세 도시(위)와, 공장 굴뚝 연기가 하늘을 뒤덮은 19세기 산업 도시(아래)를 극적으로 대비시켰다. 산업화로 타락한 도시 경관을 비판하며, 중세 고딕 양식의 부활을 주창한 상징적인 도판이다. 이러한 낭만적 복고주의는 건축 외관을 넘어 실내 장식(벽지와 타일)에까지 스며들었다.
(Source : A.W.N. Pugin, Contrasts (London: Charles Dolman, 1841), plate ‘Catholic Town in 1440; the same town in 1840’)

엔코스틱 타일은 단순히 표면에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색이 다른 흙을 반죽에 직접 박아 넣어(Inlaying) 구워낸 바닥재입니다. 수천 번을 밟아도 색이 지워지지 않는 이 견고한 타일은 주로 교회나 학교, 관공서의 복도에 깔려 건물의 권위와 영원함을 상징했습니다.

특히 ‘십자가 격자(Interlocking Cross)’ 패턴은 엔코스틱 타일의 가장 대표적인 문법이었습니다. 끝없이 연결되며 상하좌우로 꽉 맞물린 십자가의 그물망은, 흐트러짐 없는 시각적 율동감과 구조적인 안정감을 동시에 선사했기 때문입니다.

Fig 6. 19세기 말의 기하학적 바닥 타일 패턴. 
빅토리아 시대 건축의 바닥을 장식했던 견고한 기하학적 질서(Geometric Order)를 보여준다. 십자가가 교차되며 이어지고 그 사이에 꽃 메달리온이 있는 형태가 교동도에서 발견된 벽지 ‘재호’의 패턴과 유사하다.
(Source: Wikimedia Commons)
Fig 9. ‘재호’ 벽지 패턴의 구조적 분석: 엔코스틱 격자의 재현. 
상하좌우로 꽉 맞물린 ‘십자가 격자(Interlocking Cross)’ 구조는 엔코스틱 타일의 전형적인 조형 문법과 일치한다.(Source: Collection of Gosate)

2) 바닥의 문법을 벽으로: 상상 속의 하이브리드

1943년 교동도에서 발견된 이 벽지는 놀랍게도 19세기 영국의 바닥 패턴을 20세기 조선의 벽지로 끌어올렸습니다. 벽지를 가득 채운 기하학적 구조는 영락없는 엔코스틱 타일의 ‘십자가 격자’ 형태입니다. 본래 사람의 발길을 지탱하던 바닥재의 육중한 패턴이, 수직의 벽을 장식하는 마감재로 과감하게 번안된 것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구조는 ‘바닥(엔코스틱)’을 따르되, 그 디테일은 화려한 ‘벽 타일’을 흉내 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십자가 테두리를 따라 찍힌 미세한 점들은 단순한 인쇄 망점이 아닙니다. 이는 입체적인 마요리카 타일(Majolica Tile)에서 유약이 서로 섞이지 않도록 둑을 쌓아 올리는 릴리프(Relief) 기법, 즉 비딩(Beading)을 평면 위에 재현한 것입니다. 엔코스틱 타일의 견고한 뼈대와 마요리카 타일의 화려한 살이 종이 위에서 하나로 결합한 타일인 셈입니다.

Fig 7. 광주 소재 1960년대 한옥에서 발견된 마요리카 타일(Majolica Tile). 
표면의 돌출된 비딩(Beading)은 장식적 요소인 동시에, 소성 과정에서 액체 상태의 유약이 서로 섞이는 것을 방지하는 물리적 ‘재료 분리선(Material Separation Line)’의 기능을 수행한다.
(Photo by Gosate 2025)
Fig 8. 인쇄로 구현된 가상의 비딩(Beading). 
십자 패턴의 테두리를 따라 찍힌 미세한 점들은 마요리카 타일의 입체적인 릴리프(Relief)와 비슷하다.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타일의 제작 공정(유약 분리용 둑)을 평면 위에 시각적으로 재현하려던 흔적으로 해석된다.
(Source: Collection of Gosate)

3) 크랙(Crack)과 뇌문(雷紋): 동서양을 가로지르는 코드

패턴을 채우고 있는 미세한 텍스처와 장식 문양 또한 놓칠 수 없는 포인트입니다. 십자가와 격자 사이를 메우는 바탕에는 마치 오래된 도자기 표면에 금이 간 듯한 크랙(Craquelure) 무늬나 대리석 마블링, 혹은 가죽의 미세한 주름을 연상시키는 텍스처가 인쇄되어 있습니다. 이는 종이라는 평면적인 재료의 한계를 넘어, ‘시간이 축적된 고급 자재’의 질감을 흉내 내고자 했던 19세기 서양 벽지의 포 피니시(Faux-finish) 기법을 충실히 따른 결과입니다.

Fig 3. 포 피니시(Faux-finish) 기법이 적용된 표면 상세. 
바탕면에는 도자기의 빙렬(Craquelure)이나 대리석 마블링을 연상시키는 미세한 크랙 무늬가 인쇄되어 있다. 이는 종이라는 재료의 평면성을 극복하고, 시간이 축적된 고급 자재의 질감을 재현하려던 시각적 의도를 보여준다.
(Source: Collection of Gosate)

더욱 흥미로운 것은 테두리를 장식하고 있는 기하학적 띠 문양입니다. 서양 미술사에서는 이를 ‘그릭 키(Greek Key)’ 혹은 ‘미앤더(Meander)’라 부르며 고대 그리스의 영원성을 상징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동양에서는 이것을 뇌문(雷紋) 혹은 완자문(卍字紋)이라 부르며 길상과 무한한 복을 상징해 왔습니다. 꺾이고 굽이치며 이어지는 이 직선 패턴을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서양식 타일 패턴을 도입하면서도 동아시아 소비자들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가기 위해, 동서양 모두에서 ‘전통과 권위’로 통용되는 이중적인 코드를 영리하게 배치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문화적 융합의 방점을 찍는 결정적 증거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그 기하학적 테두리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꽃, 모란(Peony)입니다. 한·중·일 3국에서 공통적으로 ‘부귀(富貴)’와 ‘번영’을 상징하는 모란은 당시 집주인들이 가장 선호하던 길상의 소재였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표현 방식입니다. 디자이너는 가장 동양적인 소재인 모란을 가져와, 철저하게 서양의 디자인 문법(대칭과 반복, 그리고 도식화)으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즉, 서양의 그릇(양식)에 동양의 맛(소재)을 담아낸 셈입니다. 이 양식화된 모란이야말로 그릭키 문양보다 훨씬 더 명징하게, 이 벽지가 서구의 모방을 넘어 동북아시아의 근대적 미감으로 재탄생한 ‘혼종의 결과물’임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Fig 4. 테두리의 그릭키(Greek Key) 패턴과 모란(Peony)
서양 고전주의의 ‘미앤더(Meander)’ 문양이 사용되었으나, 그 형태는 동양 전통의 ‘뇌문(雷紋)’과 흡사하다. 그 안쪽에는 부귀를 상징하는 모란꽃을 서양식 로제트(Rosette)처럼 정형화해 배치했다. 이는 서구의 기하학적 양식을 빌려와 동아시아의 길상(吉祥) 염원을 담아낸 가장 결정적인 ‘혼종’의 사례다.
(Source: Collection of Gosate)

3. 상하이의 붓, 혹은 일본이 동경한 대륙의 색

그렇다면 이 이국적인 물건은 어디서 왔을까요? 흔히 일제강점기의 산물이라 하여 일본 본토의 내수용 제품으로 단정 짓기 쉽지만, 패턴의 묘사와 색감을 자세히 뜯어보면 대륙(상하이·만주)의 냄새가 짙게 묻어납니다.

벽지 속 십자가 끝부분의 아칸서스 잎사귀 장식은 서양 원본의 날카로움 대신, 둥글고 뭉툭하며 어딘가 기름진 느낌을 줍니다. 이는 1930~40년대 상하이의 광고 포스터인 월분패(月份牌) 속 그림들과 미감을 공유합니다. 서양의 아르데코 양식을 동양화의 붓맛으로 둥글게 번안해낸, 소위 상하이 모던 스타일입니다. 또한 일반 펄프지보다 매끄럽고 질긴 종이의 물성과 짙은 청록색(Dark Teal) 잉크는 당시 상하이와 대련의 조계지에서 유행하던 석판 인쇄물의 특징을 고스란히 보입니다.

Fig 5-6. 1930년대 상하이 월분패(月月份牌) 속 카펫 디테일. 
서양의 날렵한 아칸서스(Acanthus) 도안이 중국 화가의 붓끝을 거치며 운문(雲紋)이나 당초문(唐草紋)을 닮은 뭉툭하고 둥근 동양적 문양으로 재해석되었다.
(Source: Pinterest)
Fig 7. ‘재호’ 벽지의 십자(Cross) 패턴 상세. 
서양의 아칸서스 잎사귀가 기하학적인 십자 형태로 단순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앞서 살펴본 월분패 속 카펫의 문양과 시각적 맥락을 공유하며, 당시 서구 양식이 동아시아적으로 도안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해석할 수 있다.(Source: Collection of Gosate)

물론, 이것이 반드시 중국에서 생산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당시 일본 내에서도 ‘상하이 스타일’은 모던함의 상징으로 유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일본의 제지 회사가 상하이와 만주, 조선 시장을 겨냥해 ‘대륙풍(大陸風)’ 디자인으로 기획 생산하여 수출한 제품일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이 벽지가 당시 동아시아 3국을 관통하던 ‘서구적 근대’에 대한 욕망이 투영된 결과물이라는 점입니다.

4. 벽지 뒤의 현실: “대륙의 정열”과 “궁성요배”

그러나 이 아름다운 벽지의 환상은, 그 이면을 들여다보는 순간 서늘한 당시의 현실로 바뀝니다. 벽지를 지탱하고 있던 초배지를 뜯어내자, 1943년경 발행된 매일신보(每日申報)의 지면이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Fig 8. 1943년 매일신보(每日申報) 지면 (초배지). 
일제 강점기 말기의 전시 체제와 만주 관련 기사가 실린 신문이 초배지로 사용되었다. 
(Source: Collection of Gosate)

초배지 속 기사는 화려한 벽지 무늬와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전쟁 막바지의 급박한 상황을 증언합니다. 신문 중앙에는 “대륙(大陸)의 정열(情熱)을 안고”라는 선동적인 헤드라인과 함께, 만주 개척을 위해 떠나는 청년의의용대의 도열한 사진이 실려 있습니다. 일제가 식량 증산과 병력 확보를 위해 조선의 청년들을 ‘개척’이라는 미명 하에 사지로 내몰던 시기였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우측 하단에는 “매조(每朝) 궁성요배(宮城遙拜) 방송시간 변경”이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매일 아침 라디오에 맞춰 일본 천황이 있는 동쪽을 향해 절을 해야 했던 시간까지 통제받던, 식민지 백성의 숨 막히는 일상을 생생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5. 맺음말: 환상으로 덮은 시대의 불안

결국 이 벽지는 단순한 장식재를 넘어, 1940년대 초반 엔 블록(Yen Bloc) 체제가 만들어낸 기이한 시대적 모순을 응축하고 있는 사료입니다. 전선에서는 청년들이 총알받이로 내몰리는 징집의 공포가 실재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전쟁 수행을 위해 가동된 거대한 경제 블록 안에서는 군수 자금과 물자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회전하고 있었습니다. 서해의 무역 거점이었던 교동도는 그 모순의 최전선이었습니다.

징용과 공출의 압박이 조여오는 와중에도, 한편에서는 대륙에서 건너온 화려한 최신 유행 벽지를 바를 수 있었던 전시(戰時)의 소비. 초배지에 적힌 ‘결전(決戰)’의 비장한 구호 위에 이토록 매끄럽고 사치스러운 ‘자본의 문양’이 태연하게 덧발라진 이 층위(Layer)야말로, 전쟁과 수탈 그리고 자본의 욕망이 복잡하게 뒤엉켜 돌아가던 식민지 말기의 풍경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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