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비잔틴의 옥타그램과 두 갈래의 경로
본 패턴의 핵심 구조인 십자가 중첩패턴은 비잔틴 제국의 모자이크와 장식 예술에서 유래합니다. 기하학적 정합성을 추구했던 비잔틴의 장식 문법은 제국의 쇠퇴와 영향력 확산 과정에서 크게 두 갈래의 경로로 전파되었습니다.
첫 번째 경로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거쳐 영국에 이르는 서유럽 노선입니다. 비잔틴의 격자 문법은 19세기 고딕 복고주의(Gothic Revival)와 결합하여 중세 성당 바닥을 장식하던 엔코스틱 타일(Encaustic Tile)로 재현되었습니다. 산업혁명기 영국에서는 이 기하학적 골격 위에 마요리카 타일(Majolica Tile)의 비딩(Beading) 장식을 결합한 양식이 발전했으며, 이것이 본 벽지에서 확인되는 ‘타일형’ 프레임의 원형을 이룹니다.
두 번째 경로는 동방 정교회를 통해 러시아로 전승된 노선입니다. 러시아의 성상화(Icon), 민속 자수, 건축 문양으로 정착한 옥타그램은 하얼빈과 만주로 이주한 백계 러시아인들에 의해 동북아시아 디자인 시장에 유입되었습니다.

19세기 비잔틴 리바이벌(Byzantine Revival) 양식으로 제작된 이 모자이크는 십자가가 중첩되며 팔각형과 다이아몬드 격자를 형성하는 전형적인 인터로킹(Interlocking) 구조를 보여준다.
Source : Wikimedia Commons
(Photo by MOSSOT)
license : CC BY-SA 4.0
2. 문명의 조우: 상해와 만주를 경유한 양식의 수렴
유라시아의 양 방향으로 전파되었던 이 두 계보는 20세기 초 아시아의 디자인 허브였던 상해(Shanghai)와 만주(Manchukuo)에서 재결합됩니다. 이 지점에서 본 벽지가 한반도에 도달하기까지의 경로에 대해 두 가지 유력한 가설을 검토할 수 있습니다.
상해풍(海派)의 영향?: 절충주의적 변용의 남방 루트
첫번째는 1930년대 아시아 디자인의 허브였던 상해를 통해 유입되었을 가능성입니다. 상해는 당시 서구의 아르데코(Art Deco)를 주체적으로 수용하여 **’해파(海派, Haipai)’**라 불리는 독자적 절충주의 양식을 구축하고 있었습니다.
상해풍 디자인은 서구의 기하학적 골격 내부에 동양적 모티브와 화풍을 삽입하는 방식을 즐겨 사용했습니다. 본 벽지의 엔코스틱 타일식 격자 내부에 보상화 혹은 튜더 로즈풍의 메달리온이 배치된 점은 이러한 상해식 절충주의의 문법과 궤를 같이합니다.
상해에서 생산된 도판이나 완제품이 부산·인천항을 통해 직접 유입되었거나, 혹은 상해의 유행을 포착한 일본 벽지 제조사들이 이를 상업적으로 재편집하여 조선 시장에 보급했을 가능성(간접 유입)을 상정해 볼 수 있습니다.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던 ‘절충주의’ 디자인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여의두문을 형상화해 서양식 아칸서스문양을 연상시키게 하는 디자인이 유행하였다.
Covers of The Eastern Miscellany magazines designed by Chen Zhifo in 1927-1928. Photos from Guan Shanyue Art Museum
만주·러시아의 영향?: 북방 루트를 통한 대륙적 미감의 유입
두 번째는 하얼빈과 만주국을 거쳐 한반도로 내려온 북방 경로에 주목하는 가설입니다.
십자가가 중첩되어 형성되는 8방향의 옥타그램(Octagram) 구조는 러시아 정교회의 문양이나 슬라브 민속 자수에서 매우 흔하게 발견되는 기하학적 유산입니다. 하얼빈 등지에 거주하던 백계 러시아인들의 미감과 만주의 육중한 고전주의가 결합된 ‘만주 모던(Manchukuo Modern)’의 스타일이 일본 제조사들의 도판 설계에 영향을 주었거나, 혹은 만주에서 생산되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3. 동북아시아 문양 요소의 수용
유라시아를 거쳐온 서구적 프레임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의 토착 문양 체계와 결합됩니다. 메달리온 중앙의 사엽화 문양은 한국 전통 단청의 주화문(감꼭지 문양)과 비슷해보이는며, 문양의 모서리에 배치된 쇠코문(여의두문) 유사 도안 또한 주목해볼만한 디테일 입니다. 주화문과 소의 코뚜레를 형상화한 쇠코문 모두 중국과 조선에서 흔히 쓰이던 전통적 길상 기호로서, 서양식 기하학 프레임의 문양이 어떻게 토착화 되었는지를 보여줍니다. 서양식 식물 혹은 십자가 메달리온이 보상화(寶相華) 형태로 변용되고 쇠코문이 배치된 이 구성은 당시 동북아시아에서 어떻게 서양의 장식문화가 변용되어 안착되었는지 보여주는 좋은 예시입니다.

서양에서라면 십자가가 놓였을 자리에, 동북아시아에서 흔히 쓰였던 사엽화 문양과 쇠코문(여의두문)이 그려져있다.
(Source : Gosate Collection)

(Photo by Gosate 2023)
4. 버미큘러(Vermicular) 텍스처의 기능
패턴의 바탕을 채우고 있는 버미큘러(Vermicular) 텍스처는 19세기 말 영국에서 발전한 ‘위생 벽지(Sanitary Wallpaper)’ 기술에서 유래합니다. 이 텍스처는 롤러 인쇄 과정에서 발생하는 잉크 얼룩을 가리는 기능적 역할과 함께, 빛의 난반사를 통해 단조로운 벽면을 장식적으로 풍부하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러한 미세 텍스처는 ‘청결하고 관리가 용이한 근대적 공간’이라는 당대의 위생 담론과 연결됩니다. 1946년 시점에도 유효했던 이 제작 기법은 기술적 요구가 미적 형식으로 전환된 사례를 보여줍니다.

패턴의 바탕을 채우고 있는 버미큘러(Vermicular) 텍스처
(Source : Gosate Collection)
이 벽지가 갖는 의의
1946년의 이 벽지는 비잔틴 기하학이 서유럽 혹은 러시아를 경유하여 일본-상해·만주를 거쳐 한반도에 정착한 양식사적 수렴을 보여줍니다. 서구 고전주의 양식의 재편집 과정과 동북아시아 전통문양의 결합은 동북아시아 근대 디자인이 외래 요소를 선택적으로 수용하고 재해석했던 방식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문양 계보의 추적은 한국 근대 주거사 연구에 있어 실내장식문화 자료로서의 벽지가 지닌 사료적 가치를 재평가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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